20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총선에 임하는 PK(부산·울산·경남) 지역 고교 동문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다소 느긋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애간장을 태우는 동문회도 있다. 전(全) 동문회 차원에서 '국회의원 만들기'에 나선 학교도 있다. 어찌보면 남의 일인데 고교 동문회가 이렇게 '금배지'에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PK지역 고교 389곳 중 360곳
19대 의원 한 명도 배출 못 해
동래고, 박관용 이후 맥 끊겨
학성고 "지역 출신 만들자"
명문고일수록 후보 많아 치열
동문회서 조정…거부 땐 '왕따'
얼마전 경남 진주 모 고교 동문회에서 있었던 얘기다.
40명 정도가 참석한 소모임에서 동문들은 학교 자랑으로 열을 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50년 전통의 이 학교 출신들이 최근 장관과 대학총장, 군 장성, 지검장 등 내로라 하는 요직에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다. 진주의 명문 진주고에 밀린다는 서러움도 더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한 참석자가 불쑥 "아무리 좋은 자리 많이 배출해봐야 뭐하나. 국회의원도 한명 없는데…"는 말을 꺼냈다. 다들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어색한 상황이 계속되자 이 모임의 좌장격인 한 인사가 "그 말이 맞네"라고 정리했다.
PK지역 고교가 국회의원 배출에 혈안이다. 총동문회 차원에서 나선 학교도 많다. 그러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일반과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등을 포함해 PK지역에는 모두 389개(부산 144, 울산 55, 경남 190)의 고교가 있다. 이 중 19대 국회의원을 1명이라도 배출한 고교는 7.5%인 29개교에 불과하다. 나머지 360개 고교는 동문 국회의원이 단 1명도 없다. 그만큼 국회의원을 배출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대체로 그 지역에는 해당 명문고 출신들이 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한다.
19대 국회를 기준으로 보면 경남고는 부산의 문재인(사상) 조경태(사하을) 의원과 울산의 정갑윤(중구) 박맹우(남을) 박대동(북구) 의원, 경남의 여상규(사천·남해·하동) 의원을 배출했다. 부산고는 부산의 정의화(중동) 나성린(부산진을) 김정훈(남갑) 의원과 서울의 안철수(노원병) 의원이 있다. 경남중과 서울 중동고를 졸업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용마(龍馬:경남중·고의 상징) 동문에 포함된다.
특히 경남중·고에서는 집권당(김무성)과 제1야당(문재인) 대표가 동시에 나왔고, 부산고에서는 입법부 수장(정의화 국회의장)이 배출됐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서는 "대한민국 정치를 부산지역 고교가 장악했다"는 소리가 자주 나온다.
부산 명문 사학 중 동래고 출신 국회의원이 한명도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후 사실상 맥이 끊겼다. 이 때문에 동래고 동문들을 중심으로 국회의원 만들기 운동이 한창이지만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고민이다.
부산에서는 부산동고(김도읍·송호창)와 브니엘고(하태경·이채익), 동아고(유기준·김한표)가 2명씩 국회의원을 배출해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울산은 경남고(3명) 출신들이 사실상 장악했다. 언양농고(현 언양고)를 나온 강길부 의원이 이 지역 고교 출신으로 사실상 유일하다. 최근 학성고 등 울산 고교 동문들을 중심으로 "우리 지역 고교 출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일부 후보들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남에서는 전통 명문인 마산고(4명)와 진주고(2명)가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산고와 진주고는 역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1명도 배출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마산상고(현 용마고), 마산공고, 진해고, 거창고, 김해고, 밀양고, 진주기계공고, 거창농림고(현 아림고), 야로고(합천) 등에서도 1명씩 나왔다.
이처럼 '금배지의 자격'을 갖춘 동문을 배출하지 못하는 학교도 많다. 그에 반해 국회의원 후보가 너무 많은 학교도 상당수다. 부산과 마산·진주의 명문고가 그렇다. 이런 학교에서는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동문회 차원에서 자체 '오디션'을 실시하기도 한다. 동문회의 제안을 거부했다가 '왕따'당하는 정치인도 더러 있다.
국회의원은 고교 동문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유·무형의 '자산'이기도 하다. 우선 동문 출신 국회의원이 있으면 학교의 민원을 해결하기 쉽다.
모 고교 동문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몇 다리를 건너서 민원을 제기해도 대부분 해결되지 않았다"며 "국회의원이 1명 있으니까 어렵던 민원이 바로 해결됐다"고 소개했다.
또다른 동문회 인사는 "매번 '3류 학교'라는 소리를 듣다가 국회의원이 나온 뒤 학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달라졌다"며 "재학생들도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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